SK하이닉스가 40조원 규모 자사주 소각을 발표하자, 삼성전자도 최대 110조원 규모 주주환원 카드로 맞받았다.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두 회사 모두 역대급 현금을 쌓은 가운데, 이번엔 방식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 배당이냐 소각이냐, 그리고 그 선택의 배경에 있는 각자의 셈법을 짚었다.
SK하이닉스, 40조원 자사주 전량 소각
SK하이닉스는 8월 19일 이사회를 열고 40조원 규모(2,407만주)의 자사주를 취득해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전체 발행주식의 약 3.3%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취득 기간은 다음 날인 8월 20일부터 11월 19일까지 약 3개월로, SK증권을 통해 장내에서 직접 매수하며 하루 매수 주문수량 한도는 240만7,000주로 정해졌다. 취득이 끝나는 대로 매입한 자사주는 전량 소각한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2025~2027년 누적 잉여현금흐름(FCF) 대비 주주환원 기준을 기존 '50% 범위 내'에서 '50% 이상'으로 강화했다. 배당도 병행해 연 배당금을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렸고, 2분기 배당은 375원으로 확정했다. 발표 다음 날 SK하이닉스 주가는 3.2%(5만1,000원) 오른 164만7,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소각을 택한 이유 — SK스퀘어 지분율과 신주 발행 여력
SK하이닉스가 배당 대신 소각을 택한 데는 지배구조상의 계산이 얽혀 있다. 이번 소각으로 최대주주인 SK스퀘어의 지분율은 20.68%까지 높아진다. 소각한 주식만큼 향후 신주를 발행할 여력이 생기는데, 상대적으로 주가가 저평가된 지금 자사주를 매입·소각해두고, 훗날 기업가치가 더 높아진 시점에 신주를 발행하면 회사 입장에서 자본조달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전략이다.
삼성전자, 최대 110조원 카드…배당 중심으로
삼성전자는 8월 21일 최대 11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 방침을 공시했다. 6월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현금성자산은 92조9,164억원, 단기금융상품까지 더하면 190조원에 육박하는 실탄을 갖추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는 현금이 많다고 해서 이를 모두 정상적인 잉여현금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번 공시에서 명시했다. 3년간 총 FCF를 계산할 때 메모리 장기공급계약(LTA)의 선수금과 임직원 성과급 주식보상 관련 지출액은 미리 차감하도록 규정했다. 현재 정책은 2024~2026년 3개년간 누적 FCF의 50%를 재원으로, 연간 약 9조8,000억원 수준의 정규배당을 지급하고 이후 잔여 재원이 발생하면 추가로 환원하는 구조다. 2분기 배당은 주당 374원(1분기 372원)으로, 분기 총 배당 규모는 약 2조4,500억원이었다. 별도로 15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도 함께 의결됐는데, 이는 소각용이 아니라 1편에서 다룬 임직원 특별경영성과급 등 보상 목적의 물량이다. 공시 다음 날 삼성전자 주가는 3.87%(1만500원) 오른 28만1,500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는 아직 방식도, 시기도 정해지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실제 환원 방식과 일정이 SK하이닉스만큼 확정적이지 않다. 올해 3분기분으로는 정규배당을 포함해 약 30조원을 현금배당하기로 했는데, 정확한 금액은 10월 말 이사회에서 확정한다. 나머지 약 60조~80조원은 배당으로 줄지,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갈지를 포함한 구체적인 방식 자체가 연간 실적이 확정되는 내년 1월 이사회에서 결정된다. 즉 삼성전자가 자사주 소각 자체를 배제한 건 아니지만, SK하이닉스처럼 규모와 시기, 전량 소각 여부를 한꺼번에 확정하지는 않은 셈이다.
여기에는 지배구조상의 제약도 얽혀 있다. 삼성생명(약 8.51%)과 삼성화재(약 1.49%)가 보유한 삼성전자 보통주 지분을 합치면 10%에 근접한다. 삼성전자가 보통주를 대규모로 소각해 전체 발행주식 수가 줄어들면, 두 금융계열사의 지분율이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상 10% 기준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증권가에서 잔여 환원액 중 배당 비중이 더 커지거나, 보통주 대신 우선주 소각이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시장은 이 '확정성의 차이' 자체를 수급 요인으로 본다. SK하이닉스는 회사가 명확한 매수 주체로 등장해 정해진 기간 내 주식이 실제로 사라지는 구조인 반면, 삼성전자는 잔여 환원 재원 중 자사주 매입·소각에 실제로 얼마가 투입될지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역대 주주환원과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주주환원 역사를 돌아보면 이번 규모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2015~2017년(FY 2015-2017) 배당 12조9,000억원·총 주주환원 33조5,000억원, 2018~2020년 배당 39조6,000억원·총 주주환원 39조6,000억원(2018년 자사주 전량 소각 포함), 2021~2023년 배당 29조4,000억원·총 주주환원 29조4,000억원이었다. 지금 거론되는 90조~110조원은 이 과거 3개년 주기 전체를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소액주주는 다른 곳을 본다
다만 이런 대규모 환원 발표를 모두가 반기는 건 아니다. 일부 소액주주들은 1편에서 다룬 특별경영성과급을 두고 주주총회 승인 없이 최대 40조원 규모의 성과급이 책정된 것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하며,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에게 행동에 나서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결국 반도체 호황으로 쌓인 막대한 현금을 두고 임직원(성과급)과 주주(배당·소각) 양쪽에서 동시에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배당과 소각, 성과급이라는 세 갈래 자금 배분 사이에서 회사가 어떤 균형을 잡는지가 앞으로도 계속 관찰해야 할 부분이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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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현금흐름(FCF) —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에서 설비투자(CAPEX)를 뺀 금액. 투자를 마친 뒤 남는 현금이라 주주환원 여력을 보여주는 대표 지표로 쓰인다.
자사주 소각 — 회사가 사들인 자기 주식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 유통 주식 수가 줄어 1주당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장기공급계약(LTA) — 고객사와 미리 가격·물량을 정해 여러 해에 걸쳐 공급하기로 한 계약. 계약 시 받는 선수금은 일반적인 영업활동 현금과 성격이 달라 별도로 구분해 다루기도 한다.
금산법(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 —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산업자본)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률. 삼성생명·삼성화재처럼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한 금융계열사가 이 규제의 적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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