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케트배터리'로 잘 알려진 세방전지의 자회사 세방리튬배터리가 현대자동차와 LG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조 단위 배터리팩 일감을 확보했다. 두 계약을 합치면 규모는 3조원을 넘어서는데, 이는 지난해 세방리튬배터리 매출(3,301억원)의 9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납축전지가 주력이던 세방그룹의 사업 구조가 2차전지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3조원 수주, 두 건으로 나뉜다
이번 수주는 성격이 다른 두 계약이 겹친 결과다. 하나는 현대차의 신형 하이브리드 차량용 배터리팩으로, 올해 3월 업계에 처음 확인된 현대차 차세대 '코나' 하이브리드(코드명 SX3k) 프로젝트가 그 실체다. 세방리튬배터리는 이 차량의 배터리 팩 조립을 담당하며 관련 생산 라인을 구축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하나는 LG에너지솔루션의 신형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팩 공급 계약이다. 두 건 모두 수년에 걸친 장기 공급계약으로, 합산 규모가 3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왜 세방리튬배터리였나
세방리튬배터리는 배터리 셀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 같은 셀 업체로부터 셀을 공급받아, 구조·전장·열관리 설계부터 조립, 안전성·신뢰성 검증까지 배터리팩 생산 전 과정을 맡는 시스템업체다. 원래는 차량용 빌트인캠(블랙박스) 전용 보조 배터리가 주력이었는데, 2021년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현대모비스에만 맡겨온 전기차용 배터리팩 공급을 처음으로 다른 협력사에 개방하면서 세방전지가 1차 협력사로 선정된 게 사업 확장의 출발점이 됐다. 이후 차량용 고전압·저전압 배터리와 ESS를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면서, 자동차와 에너지저장장치 시장을 동시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이번에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물량을 동시에 확보한 것도 이런 설계·양산 역량을 두 대형 고객사로부터 나란히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오하이오에 베팅한 이유
LG에너지솔루션과의 ESS 계약은 지난 6월 이미 윤곽이 드러난 바 있다. 당시 확인된 규모는 1조8,000억원으로, 세방리튬배터리는 미국 오하이오주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LG에너지솔루션의 전력망용 ESS 제품 'JF2 링크'에 들어가는 배터리 모듈 생산을 맡기로 했다. 관련 설비투자(CAPEX)는 1,500억원 규모이며, 세방전지는 이를 위해 세방리튬배터리에 1,0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하고 이상웅 세방그룹 회장과 장남 이원섭 전무도 직접 증자에 참여했다. 이 물량은 올해 4분기부터 매출로 반영되기 시작할 전망이다. 미국 현지에 생산기지를 두는 방식을 택한 건, 완성된 배터리 모듈을 매번 국내에서 실어 나르는 대신 최종 수요처(북미 전력망·ESS 시장) 인근에서 조립해 공급 안정성과 물류 효율을 동시에 잡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수주와 실적 사이의 시차
다만 3조원이라는 수주 규모를 곧바로 올해 실적으로 연결 짓기는 이르다. 두 계약 모두 한 번에 매출로 잡히는 게 아니라 수년에 걸쳐 나눠 인식되는 장기 공급계약이고, 그중 LG에너지솔루션 ESS 물량조차 4분기부터 '단계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하는 단계다. 문제는 정확히 몇 년에 걸친 계약인지는 보도에서도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년에 걸친 장기 공급계약"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약 기간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기간을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체감되는 규모는 크게 달라진다. 자동차 부품·배터리 공급계약이 통상 완성차 모델의 생산주기에 맞춰 5~7년 안팎으로 체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업계 관행을 참고해, 몇 가지 가정으로 연평균 매출을 단순 환산해보면 다음과 같다.
| 가정 계약기간 | 연평균 매출(3조원 기준) | 지난해 매출(3,301억원) 대비 |
|---|---|---|
| 5년 | 약 6,000억원 | 약 1.8배 |
| 7년 | 약 4,300억원 | 약 1.3배 |
| 10년 | 약 3,000억원 | 비슷한 수준 |
"매출의 9배"라는 표현은 계약 총액을 지난해 한 해 매출과 단순 비교한 누적 기준 숫자다. 같은 3조원이라도 계약 기간을 몇 년으로 보느냐에 따라 연간 임팩트는 '기존 매출을 두 배 가까이 키우는 수준'일 수도, '완만하게 우상향하는 성장세를 뒷받침하는 수준'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만 세방리튬배터리 매출이 2023년 1,780억원에서 지난해 3,301억원으로 이미 뚜렷한 성장세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어느 쪽 가정이더라도 이번 수주가 그 성장세에 힘을 보태는 방향이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정확한 계약 기간과 연도별 매출 인식 계획은 앞으로 나올 사업보고서나 IR 자료를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배터리팩 — 배터리 셀 여러 개를 구조·전장·열관리 설계를 거쳐 하나의 완성된 부품 단위로 묶은 것. 셀 제조와는 별개의 전문 영역으로, 세방리튬배터리처럼 셀을 직접 만들지 않고 팩·모듈 조립만 전문으로 하는 업체들이 있다.
ESS(에너지저장장치) — 발전한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시스템. 전력망 안정화나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필수 설비로 꼽힌다.
제3자배정 유상증자 — 기존 주주가 아닌 특정 제3자를 대상으로 새 주식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
📰 참고 기사:
세방전지, 현대차·LG 兆단위 수주 잭팟
세방전지, 현대차·LG엔솔서 조단위 수주 따냈다
세방리튬배터리, LG엔솔과 1.8조원 북미 ESS 공급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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