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가 한국 증시를 정면으로 저격했다. 칼럼니스트 슐리 렌은 4일(현지시간) '한국 역시 투자 부적격 국가가 되고 있다(South Korea Is Becoming Uninvestable, Too)'는 제목의 칼럼에서, 코스피를 "올해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동시에 가장 변동성이 큰 시장 중 하나"로 규정했다. 오늘 하루만 해도 코스피가 5%대로 출렁였던 걸 감안하면, 이 진단이 남 얘기 같지 않다.
27거래일 만에 40% 폭락 — "2015년 중국과 맞먹는다"
칼럼은 코스피가 단 27거래일 만에 약 40% 급락한 것을 두고 2015년 중국 증시 폭락 사태에 맞먹는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렌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AI 인프라 수혜주들의 펀더멘털이 탄탄하고 밸류에이션도 낮아졌다는 강세론자들의 주장을 먼저 소개했지만, "이런 단순한 낙관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시장을 떠받치려던 정부의 서투른 개입이 새로 유입된 투자자층에 상처를 입히고 시장에 오명을 씌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코스피가 하루 5% 이상 오르거나 내린 날은 33일에 달했다. 같은 기간 일본 닛케이225는 4일, 홍콩 항셍지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변동성의 주범 —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칼럼이 변동성을 키운 핵심 원인으로 지목한 건 지난 5월 말 정부가 도입을 승인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다. 골드만삭스 추산에 따르면 코스피가 고점을 찍었던 6월, SK하이닉스 주가가 5% 움직일 때마다 레버리지 ETF 리밸런싱 자금이 이 종목 하루 평균 거래량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시장을 뒤흔들었다. 인기가 많았던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는 6월 고점 대비 최대 84%까지 폭락했고, 이 여파로 약 36만 개의 증권 계좌가 강제 청산됐다.
국민연금까지 원칙을 깼다
렌은 개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도 문제로 짚었다. 정부의 증시 개혁 기대감에 뒤늦게 유입된 개인 투자자들이 이번 폭락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국민연금이 코스피 급락을 막기 위해 국내 주식 비중 조정 원칙에서 벗어나 시장에 개입한 것도 시장 왜곡을 키운 요인으로 지적했다. 렌은 이번 급락이 오랫동안 한국 증시를 따라다닌 '코리아 디스카운트' 인식을 다시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과 달리 한국 투자자들은 해외 주식시장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만큼, 국내 시장을 떠나 미국 나스닥 등으로 자금이 이동할 가능성도 언급했다.
비트코인보다 흔들린 코스피
이 변동성을 숫자로 보여주는 통계도 나왔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의 일일 수익률 변동성은 63%로, '변동성의 대명사'로 불리던 비트코인(48%)보다 약 15%포인트 높았다. 다만 모든 해외 시각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같은 달 말 블룸버그 다른 보도에서는 픽텟자산운용·피델리티인터내셔널·로베코 등 글로벌 큰손들이 "코스피 밸류에이션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매력적"이라면서도 "이 정도 변동성에서는 공격적으로 저가 매수에 나서기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고 전해졌다. 밸류에이션 매력은 인정하지만, 변동성이 진정될 때까지는 관망하겠다는 쪽에 가깝다.
필자가 보기엔 — 오늘 겪은 등락이 정확히 그 사례였다
개인적으로 이 칼럼을 오늘 하루의 코스피 흐름과 겹쳐보면 남 얘기가 아니라는 게 더 실감 난다. 지난달 31일 하루 만에 17.91% 폭등해 역대 최대 상승률을 새로 쓰더니, 불과 사흘 뒤인 오늘은 반도체 차익실현 매물에 5%대로 다시 흔들렸다. 방향을 떠나서, 이 정도 진폭 자체가 블룸버그가 지적한 '변동성 그 자체가 문제'라는 진단과 정확히 들어맞는다. 며칠 새 사상 최대 상승률과 큰 폭의 조정을 번갈아 겪는 시장이라면, 아무리 펀더멘털이 좋아도 외국인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진입 타이밍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이 지적이 "한국 증시가 근본적으로 나쁘다"는 뜻으로 확대 해석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렌 스스로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펀더멘털과 낮은 밸류에이션은 인정했고, 다른 글로벌 자산운용사들도 "가격 매력은 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한다. 문제의 핵심은 기업 실적이 아니라 레버리지 상품 구조와 정부 개입이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시장 구조 자체에 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대한 규제·투자자 교육이 이미 강화되고 있는 만큼(이 사전교육 의무화도 오늘 다뤘던 것처럼 이제 막 자리잡는 단계다), 이 구조적 변동성이 시간을 두고 완화되는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벗어날 수 있을지를 가늠할 다음 관전 포인트로 보인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코스피 17.91% 폭등 마감…2008년 금융위기 기록 넘어선 '역대 최대 상승률'
역대급 폭등 하루 만에…코스피, 반도체 차익실현에 5.12% 급락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 특정 개별 종목의 주가 변동을 일정 배율(주로 2배)로 추종하도록 설계된 상장지수펀드로, 기초자산 대비 가격 변동성이 훨씬 커 시장 전체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 한국 기업들이 비슷한 실적의 해외 기업보다 낮은 주가로 평가받는 현상으로, 지배구조 문제·낮은 주주환원·지정학적 리스크 등이 원인으로 꼽혀왔다.
일일 수익률 변동성 — 하루 수익률이 평균에서 얼마나 크게 벗어나는지를 측정하는 지표로, 단순 가격 등락폭이 아니라 등락의 불규칙성 자체를 보여준다.
📰 참고 기사:
블룸버그 "코스피 급락에 대외신뢰 흔들…'투자 힘든 시장' 인식"
블룸버그 "한국 투자 부적격 국가 되나"...코스피 변동성 맹비난
'비트코인=변동성'은 옛말⋯ 코스피, 올해 비트코인보다 15%P 더 흔들렸다
블룸버그 "글로벌 큰손들, '저 세상급' 변동성에 코스피 저가 매수 미뤄"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