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도, 헬릭스미스도, 제넨셀도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런데 같은 한국 바이오 업계에서 실제로 미국 시장의 문턱을 넘은 사례도 있다. 2024년 8월,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가 국산 항암제로는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이 성공 사례와, 애초에 신약 하나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확률의 벽을 함께 짚어본다.
렉라자, 항암제 분야 첫 FDA 승인
국내 신약 개발의 역사는 1999년 SK케미칼의 항암제 '선플라주'가 식약처 허가를 받으며 시작됐다. 국산 신약 1호였던 이 약을 개발하는 데는 약 10년이 걸렸고, 연구비 81억원에 정부 지원 13억6,000만원이 더해졌다. 이후 27년 동안 국산 신약은 44호까지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성과로 꼽히는 게 유한양행의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다. 렉라자는 2021년 1월 국내에서 31호 국산 신약으로 허가받았고, 2024년 8월 19일 미국 FDA로부터 존슨앤드존슨(J&J)의 '리브리반트(아미반타맙)'와의 병용요법으로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 승인을 받았다. 국산 신약 중 아홉 번째 미국 진출이자, 항암제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의 FDA 승인이었다.
단독 개발이 아니라 협업의 결과였다
렉라자의 성공 스토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이 약이 유한양행 한 곳의 단독 개발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시작은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스코텍이 신약개발을 위해 2008년 미국 보스턴에 설립한 자회사 제노스코의 고종성 대표가 연세암병원 조병철 교수와 만나 후보물질 연구 협력을 논의하면서, 목표로 삼을 후보물질의 프로파일을 함께 설정했다. 이듬해인 2014년 제노스코가 물질 설계와 개발후보 발명, 특허(지식재산권) 확보를, 오스코텍 본사가 약동력학과 독성시험을 각각 맡는 방식으로 공동개발을 진행해 개발후보물질을 확보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질이 2015년 7월 유한양행에 전임상 단계로 기술이전되면서 본격적인 상업화 단계에 들어섰다. 이후 2018년 유한양행이 다국적 제약사 얀센바이오테크에 12억5,500만 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하면서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 5,000만 달러를 받았고, 이 협력이 최종적으로 미국 승인까지 이어졌다. 2013년 첫 논의부터 2024년 FDA 승인까지 약 10~11년이 걸린 셈인데, 그사이 제노스코·오스코텍(후보물질 발굴)→유한양행(임상 개발·국내 상업화)→얀센/J&J(글로벌 3상·미국 상업화)로 이어지는 역할 분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글로벌 신약 릴레이'라 부르기도 한다.
비소세포폐암 환자는 전체 폐암 환자의 80~85%에 달하는데,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요법이 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한양행이 받을 연간 로열티는 3,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신약 개발이 한 회사의 독자 기술만으로 완결되기보다, 개발-기술이전-상업화로 이어지는 협업 구조를 통해 결실을 맺는 경우가 많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임상 3상까지 평균 10.5년, 성공률은 7.9%
렉라자 같은 성공 사례가 왜 드문지는 숫자를 보면 분명해진다. 한국바이오협회가 2011~2020년 글로벌 임상 개발 데이터(1만2,728건의 임상 단계 이행 기록)를 분석한 결과, 신약 후보물질이 임상 1상에 진입해 최종 허가를 받기까지 걸리는 평균 기간은 10.5년이었다. 단계별로는 임상 1상 2.3년, 2상 3.6년, 3상 3.3년, 허가승인 단계 1.3년이 소요됐다. 그런데 이 모든 단계를 통과해 최종 허가를 받는 성공률(LOA)은 단 7.9%에 그쳤다. 열 개 후보물질 중 아홉 개 이상은 어느 단계에서든 탈락한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이 기간이 더 길어지고 성공률은 더 낮아지는 추세인데, 2025년 기준 개발 기간은 평균 10.5년(2011년 7.6년에서 늘어남)으로, FDA 승인 성공률도 과거 10% 안팎에서 최근 8.2%로 떨어졌다.
가장 큰 관문은 2상
네 단계 중 유독 2상의 통과율이 낮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같은 기간 임상 1상 후보물질이 2상으로 넘어가는 비율은 52%, 3상이 최종 허가 신청 단계로 넘어가는 비율은 57.8%였던 반면, 2상에서 3상으로 넘어가는 비율은 28.9%에 그쳤다. 1상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안전성 확인이 중심이라 상대적으로 통과가 쉽고, 3상은 이미 2상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확인된 물질만 올라가는 단계라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반면 2상은 환자를 대상으로 실제 효과를 처음 검증하는 단계여서, 신약 개발 전체에서 가장 많은 후보물질이 탈락하는 구간으로 꼽힌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도 평균 1억 달러(약 1,5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성공률 통계 자체가 마땅치 않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임상시험 성공률은 몇 %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질문에 답할 만한 국내 통계는 마땅치 않다. 앞서 다룬 '7.9%'는 Biomedtracker라는 글로벌 데이터베이스가 2011~2020년 전 세계 1만2,728건의 임상 단계 이행 기록을 추적해 낸 수치인데,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런 방식의 성공률(LOA) 통계를 별도로 산출해 공개하지 않는다. 대신 식약처가 매년 발표하는 건 '승인 건수'와 '국가별 순위' 같은 양적 지표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임상시험 국가별 순위는 세계 4위, 2024년에는 6위(미국·중국·호주·스페인·독일에 이어)를 기록했고, 도시별로는 서울이 전 세계 1위, 단일국가 임상시험 기준으로는 3위를 차지했다. 임상시험을 유치하는 '양'에서는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뜻이다.
다만 '양'과 '성공률'은 다른 질문이다. 한국 자체 통계로 확인되는 건 성공 확률이 아니라 소요 기간 쪽이다. 한 분석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특허 출원부터 임상시험계획서 제출까지 2.8년, 임상 1상 1.4년, 2상 2.4년, 3상 3.1년이 걸려 1상부터 3상까지 총 6.6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앞서 살펴본 글로벌 평균(1상 2.3년+2상 3.6년+3상 3.3년, 합계 9.2년)과 비교하면 오히려 더 짧은 수치다. 다만 이 두 통계는 조사 기관과 산출 방식이 다른 자료라, 이 차이를 곧바로 "한국이 더 빠르다"는 결론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참고 수치 정도로 보는 게 안전하다.
성공률 통계 자체가 마땅치 않은 이유는 국내 신약 개발의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2017년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 이사장은 "국내 개발신약도 3상까지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관·산·학의 임상개발 역량 제고와 규제 선진화, 인센티브 도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서 살펴본 렉라자 사례처럼, 국내에서 발굴된 신약 후보물질 상당수는 임상 2상 전후로 대형 제약사에 기술수출(라이선스 아웃)되고, 이후의 3상과 허가 절차는 기술을 넘겨받은 해외 기업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최종 성공이나 실패가 '한국 기업의 임상'으로 집계되기 어려워, 애초에 한국만의 성공률을 깔끔하게 산출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다.
확률의 게임이라는 걸 알고 접근할 것
네 편에 걸쳐 살펴본 내용을 종합하면, 바이오·제약주 투자는 태생적으로 확률이 낮은 게임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임상 1상에 진입한 후보물질이 실제 신약으로 세상에 나올 확률은 10곳 중 1곳도 안 된다. 제넨셀, 신라젠, 헬릭스미스처럼 임상 실패나 의혹으로 얼룩진 사례가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도, 애초에 이 확률 구조상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렉라자 같은 성공 사례가 있다는 사실이 이 확률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렉라자의 성공 자체가 발굴부터 기술이전, 글로벌 임상, 승인까지 10년 가까운 시간과 여러 회사의 협업을 거쳐야 했다는 사실이, 신약 개발이 단기간의 호재 뉴스 몇 개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보여준다. 임상 승인이나 기술 수출 소식에 주가가 급등하는 종목을 만났을 때, 그 뒤에 남은 확률이 여전히 10분의 1도 안 된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바이오·제약주 4부작 - 3편 왜 개미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뛰어드는가
기술이전(라이선스 아웃) —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한 기업이 임상·상업화 능력을 갖춘 다른 기업에 그 권리를 넘기고, 계약금과 향후 로열티를 받는 계약 방식.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자금 부담이 큰 후기 임상을 대형 제약사와 나눠 부담하기 위해 흔히 활용한다.
LOA(Likelihood of Approval) — 임상 1상에 진입한 후보물질이 최종적으로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을 가능성을 나타내는 성공률 지표.
📰 참고 기사:
유한양행, 신약 렉라자 미국 시장 진출…FDA 승인, 국산 항암제로는 처음
27년만 44호 'K신약'…45호 '비만치료제' 나온다
의약품 임상 성공률 7.9%…개발 기간 평균 10.5년
'신약' 임상부터 허가까지 평균 10.5년‥가장 높은 벽은 2상
신약개발 분야에서 인공지능 활용 능력의 가능성
식약처, '24년 의약품 임상시험 승인 현황 발표 - KDI 경제정보센터
2023년 국내 임상시험 승인 건수 783건…전 세계 점유율 4위
한국, 글로벌 임상시험 순위 6위 달성
"신약개발 10년 소요, 제도·정책 영향 절대적"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