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준이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며 금리를 동결했는데도, 정작 원/달러 환율은 5개월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통상의 공식이 뒤집힌 배경에는 SK하이닉스의 대규모 달러 자금 유입이 있다.
매파적 동결인데 환율은 왜 떨어졌나
30일 새벽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기준금리를 3.50~3.75%로 다섯 번째 연속 동결했다. 위원 3명이 금리 인상을 주장하며 반대표를 던져, 직전 회의보다 훨씬 매파적인 분위기가 짙어졌다. 이 여파로 미국 장기 국채 금리는 2007년 7월 이후 1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통상 미국 장기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 달러 선호 심리가 강해지며 원/달러 환율에는 상방 압력(원화 약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전 9시 16분 1435.9원까지 떨어지며 지난 2월 27일(1430.5원) 이후 약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후 다소 반등해 오전 10시 50분 기준 1447.4원에서 거래됐다. 같은 시각 달러인덱스는 0.078 오른 100.890, 엔/달러 환율은 0.141 내린 163.482엔이었다.
진짜 이유는 SK하이닉스만이 아니다
미국 금리 상승이라는 통상적인 원화 약세 요인에도 환율이 오히려 떨어진 데는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에 따른 원화 환전 수요가 상당 부분 작용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지난 10일 나스닥에 ADR을 상장하며 총 265억700만달러(약 40조원)를 조달했는데, 이는 지난달 한국 전체 무역수지 흑자의 70%를 웃도는 규모다. 이 자금이 국내 외환시장에 순차적으로 유입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상장 직전 1500원대에 육박하던 수준에서 이달 들어 1400원대 초중반까지 밀려 내려왔다.
그런데 외환당국 관계자의 설명을 보면 환율 하락은 SK하이닉스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외환당국은 최근 환율 하락 폭이 커진 배경으로 "역외의 국내 주식 환헤지 축소 목적 달러 매도와 SK하이닉스 ADR 자금의 외환시장 유입 기대 등이 겹쳤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국민연금의 환헤지 비율 확대도 원화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채권 등에 대규모로 투자하며 오히려 환율 상승(원화 약세) 압력을 만드는 주체로 지목돼왔는데, 최근 환헤지 비중을 늘리면서 반대로 원화를 사들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반도체 수출 호조에 따른 수출기업들의 달러 매도(네고) 물량도 함께 겹치고 있다. 즉 지금의 환율 하락은 SK하이닉스라는 단일 이벤트보다는, 여러 원화 강세 요인이 동시에 맞물린 결과에 가깝다.
필자가 보기엔 —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여러 요인의 겹침
개인적으로 이번 사례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처음엔 SK하이닉스 ADR 하나로 설명하고 싶어지는 극적인 흐름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원화 강세 요인이 동시에 맞물린 결과라는 점이다. 미국 금리가 19년 만의 최고 수준까지 오르는 거시적 압력 속에서도 환율이 오히려 떨어진 건, SK하이닉스의 265억달러라는 큰 자금에 더해 국민연금의 환헤지 비율 확대, 역외 투자자들의 환헤지 축소, 수출기업들의 네고 물량까지 여러 갈래의 원화 매수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단순히 개별 기업의 실적을 넘어,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전략 변화까지 연쇄적으로 이끌어내며 한국 경제 전반의 거시 지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다만 짚어볼 부분은, 이 여러 요인들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의 환전 수요는 자금이 시장에 다 풀리고 나면 자연히 소멸하는 일회성 요인이지만, 국민연금의 환헤지 비율 확대는 좀 더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성격의 변화에 가깝다. 즉 SK하이닉스발 하락 압력이 소진된 뒤에도, 국민연금의 환헤지 정책이 유지되는 한 원화 강세 요인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 미국의 매파적 통화정책과 높은 국채금리는 여전히 환율에 상방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실제로 이날 환율도 장중 저점(1435.9원)을 찍은 뒤 다시 오름세로 돌아서며 1447원대까지 반등한 흐름을 보였다. 결국 앞으로의 환율 흐름은 'SK하이닉스발 일회성 요인'과 '국민연금발 구조적 요인'이 얼마나 더 이어지는지, 그리고 미국의 추가 긴축 가능성이 얼마나 현실화되는지 사이의 힘겨루기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환율 변동을 볼 때마다 나오는 오래된 질문이 있다. 외환보유고가 부족하면 예전 IMF 때처럼 위기가 재현될 수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환율 제도 자체가 1997년과 달라져서 그 시절과 같은 방식의 위기가 구조적으로 재현되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렇다고 외환보유고의 중요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이 부분은 별도로 짚어볼 만한 주제라, 다음 글에서 이어서 다뤄보려 한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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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R(미국주식예탁증서) — 외국 기업 주식을 미국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예탁증서 형태로 발행한 것으로, 발행 기업은 이를 통해 달러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환헤지 — 해외 자산에 투자할 때 환율 변동으로 발생하는 손익을 상쇄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로, 환헤지 비율을 늘리면 통상 그 통화에 대한 매수(원화의 경우 원화 매수) 효과가 발생한다.
네고(달러 매도) —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매도하는 것을 뜻하는 업계 용어.
달러인덱스 — 유로, 엔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를 나타내는 지수로, 달러 강세·약세를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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