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빅테크의 AI 경쟁은 매일 뉴스에 오르내리지만, 정작 국내 기업들이 어디까지 왔는지는 잘 안 보인다. 네이버, 카카오, LG가 만든 한국어 특화 AI 모델들은 실제로 어느 수준일까. 그리고 정부는 이 흐름에 얼마나 힘을 싣고 있을까.
3파전 —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카카오 카나나, LG 엑사원
한국의 초거대 AI 모델 경쟁은 크게 세 곳이 이끌고 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시리즈를 통해 한국어 이해와 추론에 특화된 모델을 내놓고 있고, 카카오는 카카오톡과의 통합을 염두에 둔 '카나나' 시리즈를, LG AI연구원은 텍스트·이미지를 함께 이해하는 멀티모달 모델 '엑사원'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 회사 모두 단순 언어모델을 넘어 '추론 모델' 경쟁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씽크'를 통해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추론하는 기능을 선보였고, 카카오도 카나나에 추론 기능을 강화한 버전을 잇따라 공개했다. LG는 지난 4월 텍스트와 이미지를 동시에 이해하는 '엑사원 4.5'를 발표하며 멀티모달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
성능은 실제로 어느 정도인가
흥미로운 건 규모가 작은 모델일수록 오히려 균형이 잘 잡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는 점이다. 업계 벤치마크에서 네이버의 소형 모델 '하이퍼클로바X 시드(1.5B)'는 LG 엑사원(2.4B), 카카오 카나나 나노(2.1B)와 비교했을 때 크기가 더 작은데도 구문 해석 성능에서 가장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카나나 역시 한국어 감정 인식 분야에서는 GPT-5보다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한국어'라는 특정 영역에서는 이미 글로벌 최상위 모델들과 견줄 만한 지점까지 올라왔다는 뜻이다.
다만 종합적인 지능 수준에서는 아직 격차가 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2025년 결산 기준으로 국내 대표 모델들이 글로벌 최상위권 모델과 1년 이상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고, 2026년을 한국이 이 격차를 좁혀 AI '2군'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스탠퍼드 AI 인덱스가 짚은 한국의 위치
지난 4월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발표한 '2026 AI 인덱스' 보고서는 한국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보여준다.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AI 특허 건수가 14.31건으로 세계 1위를 차지해, 기술 혁신의 밀도 면에서는 확실한 강점을 보였다. 다만 보고서는 한국이 투자 규모와 플랫폼 경쟁력에서는 여전히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짚었다. 특허와 논문 같은 '연구 성과' 지표는 강한데, 실제 자본이 투입되는 규모나 서비스로 대중에게 도달하는 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로 투자 격차는 뚜렷하다. 2025년 전 세계 기업의 AI 투자 규모는 5,800억 달러를 넘어섰는데, 이 중 미국의 투자 규모는 중국의 20배 이상에 달했다. 다만 아시아 스타트업 투자로 시야를 좁히면 다른 그림도 보인다. 올해 1분기 아시아 AI 스타트업 투자는 274억 달러로 3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한국도 반도체 기업 리벨리온의 대규모 투자 유치에 힘입어 전년 대비 55% 늘었다.
정부는 예산으로 '5분의 1'을 걸었다
정부도 이 흐름에 상당한 무게를 싣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6년 예산은 23조7,417억원인데, 이 중 AI 대전환에만 5조1,000억원이 배정됐다. 부처 전체 예산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로, 예산 구조 자체를 사실상 'AI 중심'으로 재편했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다. 투자 방향은 전국 단위 연산·데이터 인프라를 확충하는 이른바 'AI 고속도로' 구축, 차세대 AI 기술 개발과 인재 양성, 산업·공공 영역으로의 AI 확산 등으로 요약된다.
숫자로 보면 — GPT·클로드·제미나이와 비교하면 어디쯤인가
가장 최근 사례인 LG '엑사원 4.5'를 기준으로 보면 격차의 실체가 좀 더 또렷해진다. 이 모델은 파라미터 330억 개(33B) 규모로, 오픈AI GPT-5·구글 제미나이·앤트로픽 클로드 같은 최상위 모델들에 비하면 몸집 자체는 훨씬 작다. 그런데 LG AI연구원이 공개한 벤치마크에 따르면,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평가에서 엑사원 4.5는 77.3점을 기록해 GPT-5 mini(73.5점), 클로드 소넷 4.5(74.6점)를 앞섰고, 중국 알리바바의 Qwen3 235B(77.0점)도 근소하게 웃돌았다. 코딩 능력을 재는 라이브코드벤치 v6에서도 81.4점으로 구글 젬마4(80.0점)를 넘어섰다. 시각 정보 이해 능력을 종합한 13개 지표 평균에서도 GPT-5 mini와 Qwen3-VL을 상회했다.
다만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다. 이 비교 대상들은 대부분 GPT-5나 클로드, 제미나이의 '최상위 플래그십'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볍고 저렴한 보급형 모델(mini·플래시급)이라는 점이다. 즉 국내 모델이 이긴 상대는 해외 빅테크의 '경차'급이지, '슈퍼카'급 최상위 모델(GPT-5 Pro, 클로드 오퍼스, 제미나이 3 프로 등)은 아니다. 실제로 범용 지능을 재는 '인류 마지막 시험(HLE)' 같은 최상위권 벤치마크에서는 오픈AI·구글·앤트로픽 세 회사가 근소한 차이로 선두를 다투고 있는데, 이 리그에 국내 모델이 명함을 내밀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요약하면, 한국 AI는 '동급 체급 경쟁'에서는 확실히 검증받았지만, '헤비급 챔피언'과의 정면 승부는 아직 다음 과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하드웨어 격차는 더 크다
모델 성능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이를 뒷받침하는 연산 인프라다. 오픈AI·구글·앤트로픽 세 회사는 각각 수십만 개 단위의 최첨단 AI 가속기(GPU)를 동원해 모델을 학습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 인프라에 들어가는 투자 규모만 개별 기업당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AI 학습용 인프라 규모는 이에 비하면 훨씬 작은 수준으로, 앞서 언급한 '2025년 미국 AI 투자가 중국의 20배'라는 격차보다 한국의 처지는 오히려 더 열세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은 큰 모델을 무작정 키우기보다, 파라미터 수를 줄이면서도 성능은 유지하는 '경량화·효율화' 전략에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엑사원 4.5가 이전 모델(K-엑사원)의 7분의 1 크기로도 비슷한 성능을 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필자가 보기엔 — '한국어 챔피언'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로 가는 길목
개인적으로 이번 흐름에서 가장 눈여겨볼 지점은, 한국 AI가 택한 전략이 '정면 승부'가 아니라 '체급 조절'이라는 사실이다. 330억 파라미터로 GPT-5 mini급을 이기는 건 인상적인 성과지만, 이는 애초에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은 최상위 모델과 자원 대결을 벌이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내 기업들은 '더 크게'가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라는 다른 링에 올라섰고, 그 링 안에서는 확실히 실력을 증명하고 있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 전략이 언제까지나 유효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해외 최상위 모델들의 가격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만약 GPT-5나 클로드, 제미나이의 최상위 버전이 지금의 mini급 모델만큼 저렴해지는 시점이 온다면, 국내 모델의 '가성비' 우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관건은 두 가지다. 첫째는 지금의 효율화 전략을 발판 삼아 언젠가 최상위 체급까지 따라잡을 수 있느냐, 둘째는 설령 최상위 체급을 따라잡지 못하더라도 한국어·국내 산업 데이터라는 '홈그라운드 이점'만으로 충분한 시장을 지켜낼 수 있느냐다. 정부가 예산의 5분의 1을 걸고, 기업들이 추론·멀티모달로 영역을 넓혀가는 지금의 움직임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1~2년 안에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파라미터(Parameter) — AI 모델 내부에 있는 조절 가능한 수치값으로, 학습 과정에서 값이 조정되며 모델의 지식과 판단 능력이 여기에 저장된다. 흔히 모델의 크기를 가늠하는 지표로 쓰이며, 많을수록 반드시 성능이 좋은 건 아니지만 대체로 더 복잡한 패턴을 학습할 여지가 커진다.
추론 모델(Reasoning Model) — 단순히 답을 생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사고하며 분석·예측·판단까지 수행하는 AI 모델.
멀티모달(Multimodal) AI —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 음성, 영상 등 여러 형태의 정보를 함께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AI.
소버린(Sovereign) AI — 특정 국가가 자국의 언어·데이터·문화에 맞춰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통제하는 인공지능을 뜻하는 개념.
📰 참고 기사:
[AI 2025 결산] 엑사온·클로바·카나나 성과냈지만...글로벌 AI와는 아직 1년 이상 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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