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형 팔란티어'를 목표로 내걸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국방부·우주항공청과 함께 AI·드론 등 신안보 분야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하는 실무협의체를 가동하며, 방산 대기업 중심이던 국방산업 지원 정책이 민간 혁신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방향 자체는 세계적인 흐름과 다르지 않지만, 목표로 내건 숫자와 실제 국방 현실 사이에는 아직 채워야 할 간극도 함께 보인다.
2030년까지 '1조 클럽' 5곳, '1000억 클럽' 50곳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9일 서울에서 '미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실무협의체' 첫 회의를 열고 후속 과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협의체는 앞서 지난 6월 26일 중기부·국방부·우주항공청이 공동 발표한 '미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기획예산처·방위사업청 등 관계부처가 함께 참여한다. 정부의 목표는 명확하다. 2030년까지 신안보 분야에서 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 5개사와 매출 1,000억원 이상 혁신기업 50개사를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대표 모델로는 데이터 분석·AI 기술로 미국 국방·정보기관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며 급성장한 미국 기업 팔란티어가 거론된다.
드론·AI·우주항공·사이버보안이 핵심 4대 분야
정부는 신안보 전략분야로 AI·드론, 우주항공, 사이버보안 등을 지정했다. 국방부는 이 중 AI·드론 분야에서 군이 초기 수요자로 나서 민간 기술의 실증과 신속 도입을 지원하는 '마중물' 역할을 맡는다. 이를 위해 혁신기업의 기술을 실제 부대에서 시험할 수 있는 실증전담부대를 2026년까지 9개로 늘리고, 부대별로 기업과 군이 함께 기술을 검증·개선하는 '혁신랩'을 구축할 계획이다. 또 한국형 장거리 자폭무인기(K-LUCAS) 도입과 함께, 50만 드론전사 양성을 위한 교육용 상용드론 6만 대를 확보해 민간 드론 기업들의 공공 판로도 함께 열어줄 방침이다.
지원 체계 — 투자부터 조달까지
정책 이행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함께 추진된다. 정부는 정책의 안정적 시행을 위해 '미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특별법'을 제정하고, 신속한 조달을 위해 국가계약법과 '국방첨단전력사업법' 등 관련 법령의 제·개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범정부 차원의 정책 조정을 위해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위원회'와 실무 추진단도 설치된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지식재산권 처리 방식이다. 정부와 혁신기업이 공동 연구개발 성과에 대한 지식재산권을 공동 보유하되, 기업이 이를 민간사업에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보장하기로 했다. 이는 국방 관련 기술 개발이 자칫 군납에만 묶여 민간시장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자금 조달 구조는 미국 모델을 참고했다. 정부가 신안보 분야에 100% 직접 출자하는 '한국형 인큐텔'을 설립해 초기 자금 공백을 메우고, 1조원 이상 규모의 모태펀드·방산펀드로 성장자금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인큐텔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999년 설립한 비영리 벤처캐피탈로, 팔란티어를 포함한 여러 안보 스타트업의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온 곳이다. 여기에 더해 기술특화 자산운용사인 '한국전략기술파트너스'(가칭)를 통해 향후 5년간 최대 10조원 규모의 투자재원을 조성하고, 연구개발부터 실증·구매까지 연계하는 'OTA형 연구개발' 제도로 기업당 최대 5년간 100억원을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된다. 다만 특별법 조문과 국가계약법 개정안은 아직 공개되지 않아, 외국 자본이나 기술 유출을 걸러낼 심사 장치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담길지는 실무협의체의 다음 발표를 지켜봐야 하는 단계다.
숫자로 보면 — 목표와 현실 사이
이번 정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목표치는 '50만 드론전사 양성'과 '교육용 상용드론 6만 대 확보'다. 이 숫자들을 몇 가지 사실과 나란히 놓아보면, 판단에 참고할 만한 지점이 보인다.
- 병력 규모 — 국방중기계획은 상비병력 50만 명 유지를 전제로 짜여 있지만, 병역자원 감소로 실제 상비병력은 이미 이 선을 밑돈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 드론작전사령부 — 2023년 창설된 이 조직은 올해 1월 폐지 권고를 받았고, 국방부는 해체 대신 개편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부가 이 개편과 '50만 드론전사' 목표를 직접 연계해 설명한 적은 없지만, 시기상으로는 겹친다.
- 부품 구성 — 국내 가정·교육용 드론 시장은 중국 DJI 점유율이 70%를 넘는다. 보급 드론에 중국산 부품 트랜시버 채택이 검토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국방부는 3년 내 국산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 세 가지를 어떻게 볼지는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정책이 진행되며 좁혀질 간극으로 볼 수도, 지금 시점의 실행력을 가늠하는 신호로 볼 수도 있다. 관련 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개별 기업의 실적보다, 이 세 가지가 실제로 좁혀지는지를 먼저 눈여겨볼 만하다.
필자가 보기엔 — 방향은 맞다, 다만 세 가지 물음표가 남는다
개인적으로 이번 정책에서 가장 타당하다고 보는 지점은, 안보 환경이 재래식 무기 중심에서 AI·드론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문제의식 자체다. 민간의 혁신 속도를 국방 조달에 끌어들이겠다는 방향성도 세계적인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형 팔란티어'라는 비유도, 정부의 관심이 하드웨어보다 데이터·AI·소프트웨어 기반의 새로운 안보산업 쪽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방향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 다만 팔란티어는 순수 민간기업이면서도, 미국 국방부·정보기관과 일하는 만큼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자본 심사와 기밀정보 취급을 위한 보안 인가 등 정부의 엄격한 통제를 동시에 받는 회사이기도 하다. 이번에 정부가 함께 참고한 '인큐텔' 모델도 같은 맥락이다. 인큐텔은 형식은 민간 벤처캐피탈이지만 애초에 CIA가 만든 조직으로, 자금은 민간 방식으로 굴리되 그 뿌리에는 정보기관의 통제가 있다. '한국형 팔란티어'와 '한국형 인큐텔'이라는 두 이름 모두, 결국 자금과 통제가 함께 움직이는 미국식 모델을 빌려온 표현이라는 점을 짚어둘 필요가 있다.
다만 이 방향이 실현되려면 물음표도 셋 남는다. 목표 숫자를 뒷받침할 조직·병력 기반, 국산화 상징 사업의 실제 부품 구성, 그리고 앞서 짚은 팔란티어식 통제 축에 준하는 안보 심사 장치까지 — 셋 다 지금은 방향성 선언에 머물러 있고,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으로 나올 특별법과 국가계약법 개정안이 이 물음표들에 얼마나 구체적으로 답하느냐가, 이 정책이 선언에서 그칠지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종목이나 방향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신안보(New Security) — 전통적 군사 위협뿐 아니라 AI·사이버·우주 등 첨단기술 영역까지 아우르는 확장된 안보 개념.
팔란티어(Palantir) — 데이터 분석·AI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 국방·정보기관에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며 성장한 미국 기업으로, 소프트웨어 기반 국방 스타트업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CFIUS(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 — 국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국인의 미국 기업 투자를 심사하는 미국 정부 기구로, 필요시 지분 매각이나 기술 접근 제한 등의 조건을 부과할 수 있다.
인큐텔(IQT) —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1999년 설립한 비영리 벤처캐피탈로, 팔란티어 등 여러 안보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왔다.
K-LUCAS —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한국형 장거리 자폭무인기 사업명.
실증전담부대 — 민간 기업이 개발한 신기술을 실제 군 현장에서 시험·검증할 수 있도록 지정된 군 부대.
📰 참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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