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전 세계 중앙은행 외환보유고의 73%는 달러였다. 2025년 이 비중은 54%까지 떨어졌다. 20여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돼온 이 변화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 각국은 왜 달러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을까.
2022년, 신뢰가 흔들린 결정적 순간
탈달러화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흐름이 뚜렷하게 빨라진 계기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었다. 서방 국가들은 대응 제재로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자산을 대거 동결했고, 러시아를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배제했다. 그 결과 러시아 중앙은행의 달러 보유고는 2022년 1월 3,830억 달러에서 2023년 말 1,300억 달러까지 급감했다. 이 사건은 러시아 한 나라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에게 "달러·미국 국채 자산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하루아침에 묶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국의 제재 확대, 부메랑이 되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제재 대상은 2001년 120개국·단체에서 2024년 900개 이상으로 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추정에 따르면, 직접 제재 대상이 아니면서도 외환보유고의 10% 이상을 달러 자산으로 들고 있는 비동맹국이 30~40개국에 달한다. 제재 대상이 계속 넓어지는 것 자체가, 이 나라들에게는 "언제 우리도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구조적 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재라는 도구를 더 자주, 더 폭넓게 쓸수록 오히려 달러 노출을 줄이려는 유인이 커지는 셈이다.
다방면으로 움직이는 중국
중국은 2022년 이후 보유하던 미국 국채를 27% 넘게 줄였다. 동시에 자국 위안화 기반 결제망(CIPS)을 확대하고, 홍콩·태국·아랍에미리트 등과 중앙은행 간 디지털화폐를 즉시 결제할 수 있는 엠브리지(mBridge)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중국-브라질 간 거래는 위안화·헤알화로, 러시아-중국 교역은 이미 약 90%가 루블·위안으로 결제되고 있다.
BRICS 달러 우회로 선택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을 중심으로 한 BRICS는 구매력평가(PPP) 기준 세계 GDP의 약 40%를 차지한다. 다만 이들이 추진하는 건 달러를 대체할 단일 통화 창설이라기보다, 달러를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가깝다. 브릭스페이(BRICS Pay), 신개발은행(NDB)의 현지통화 대출, 5,000억 달러 규모의 양자 통화스와프 등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BRICS 국가 간 상호 교역에서 자국통화 결제 비중은 2024년 말 65%에서 최근 85%까지 늘었다. 다만 국 가별로 온도차는 있다. 인도 외교장관은 "달러를 기축통화 지위에서 밀어낼 계획은 없다"고 여러 차례 선을 그었는데, 이는 탈달러화가 BRICS 내부에서도 국가마다 동상이몽인 사안이라는 걸 보여준다. 미국은 이런 흐름에 강하게 반발하며, 지난해 9월 탈달러화를 추진하는 BRICS 국가에 최대 100% 관세를 물리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대안은 유로도 위안도 아닌 금
탈달러화가 진행된다고 해서 유로나 위안이 달러 자리를 곧바로 대체하는 것도 아니다. 유로는 자체적인 구조적 한계가 있고, 위안은 자본이동 통제 때문에 완전한 태환이 어렵다. 그 결과 지금까지 가장 뚜렷한 수혜를 본 자산은 금이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2022년 이후 매년 1,000톤 안팎의 금을 사들이고 있고(2025년 863톤, 2026년 755톤 예상), 그 결과 앞선 1편에서 다뤘듯 중앙은행 준비자산 중 금 비중(27%)이 미국 국채 비중(22%)을 앞지르는 데까지 이르렀다. 금은 특정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제재로 동결될 위험도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준비자산'이라는 위상을 되찾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달러가 압도적이라는 반론도
이 흐름을 "달러 패권의 종말"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달러는 여전히 전 세계 준비자산의 42%를 차지하는 압도적 1위이며, 국제 무역·금융거래 결제에서도 대안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탈달러화는 급격한 붕괴라기보다, 20여 년에 걸쳐 서서히 비중이 줄어드는 완만한 구조조정에 가깝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다음 편에서 다룰 질문
흥미로운 지점은, 미국 스스로도 이런 탈달러화 흐름을 마냥 손 놓고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새로운 카드를 하나 꺼내들었다. 바로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다. 언뜻 보면 암호화폐는 탈중앙화·탈달러화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대다수는 달러에 고정돼 있고, 그 준비자산 대부분이 미국 단기국채로 채워진다. 다음 편에서는 이 스테이블코인이 실제로는 국채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국채 수요처로 자리 잡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을 짚어본다.
(※ 본 포스팅은 특정 국가나 정치 세력을 비판하거나 지지할 목적이 아니며,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보 전달 목적의 글입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달러체제 5부작 - 2편 비트코인과의 상관관계
SWIFT — 전 세계 은행들이 국제 송금·결제 지시를 주고받는 통신망. 특정 국가의 은행을 이 망에서 배제하면 사실상 국제 금융거래가 크게 제한된다.
OFAC(해외자산통제국) — 미국 재무부 산하 기구로, 특정 국가·단체·개인에 대한 경제 제재를 관리·집행한다.
mBridge — 중국·홍콩·태국·아랍에미리트 등이 참여해 각국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로 즉시 국경 간 결제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
📰 참고 기사:
De-Dollarization Trend: Global Currency Shift Analysis
BRICS De-Dollarization in 2026: Turning Point for Global Dollar Use
BRICS Accelerates De-Dollarization as Russia and China Settle 90% of Trade in Local Currencies
BRICS 2026 Summit Prep: De-Dollarization Strateg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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