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30일 일요일

달러체제 5부작 - 4편 스테이블코인

암호화폐는 흔히 탈중앙화, 나아가 탈달러화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정작 지금 유통되는 암호화폐 중 가장 규모가 큰 스테이블코인은, 거의 전부 달러에 고정돼 있고 그 뒤에는 미국 단기국채가 쌓여 있다. 국채를 대체할 것처럼 보였던 이 자산이, 실제로는 국채 수요를 떠받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무엇인가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특정 자산(대부분 달러)에 '고정(페그)'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다. 비트코인처럼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대신, 1코인이 항상 1달러에 가깝게 유지되도록 설계돼 있다. 블록체인 위에서 유통되기 때문에 은행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도 24시간 빠르게 송금·결제할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다만 '어떻게 그 고정을 유지하느냐'에 따라 안정성이 크게 갈리는데,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있다.

①법정화폐 담보형은 발행사가 코인 발행량만큼 현금·단기국채 같은 실제 자산을 준비자산으로 쌓아두는 방식이다. 테더(USDT), 서클의 USDC가 대표적이며, 지금 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의 대다수가 이 방식이다. 이용자가 코인을 발행사에 제시하면 언제든 1달러로 되사준다는 약속(상환 보장)이 페그를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②암호화폐 담보형은 달러 대신 다른 암호화폐를 담보로 잡는다. 대표적인 다이(DAI)는 이더리움 등 변동성이 큰 암호화폐를 담보로 잡는 대신, 담보 가치를 코인 발행량보다 훨씬 크게(보통 150% 이상) 잡아두는 '과잉담보' 방식으로 가격 변동 위험을 흡수한다. 특정 발행사나 은행 계좌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지만, 그만큼 자본 효율은 떨어진다.

③알고리즘형은 아예 실물 담보 없이, 코드와 시장 유인만으로 가격을 1달러에 맞추려는 방식이다. 가격이 1달러를 넘으면 코인을 더 찍어내고, 밑돌면 회수해 유통량을 줄이는 식이다. 이 방식은 평상시엔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패닉에 빠지면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는 게 치명적 약점이다. 2022년 5월,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테라(UST)가 이 약점 때문에 실제로 붕괴했다. UST는 자매 코인 루나(LUNA)와 1대1로 맞바꿀 수 있다는 구조로 페그를 유지했는데, 대규모 인출 사태로 UST 가격이 흔들리자 이를 방어하려고 루나를 대량으로 찍어내야 했고, 그 결과 루나 가격이 폭락하며 담보 가치가 함께 무너지는 악순환('죽음의 소용돌이')이 발생했다. 일주일도 안 돼 테라·루나 생태계 전체에서 약 450억 달러가 증발했고, 이 사건 이후 순수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은 사실상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지 못했다.

바로 이 테라·루나 붕괴가, 다음에 살펴볼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이 왜 그렇게 엄격한 준비자산 요건을 못 박았는지를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GENIUS법, 스테이블코인은 미국채의 신뢰와 가치를 추종

2025년 7월 18일 서명된 미국의 GENIUS법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반드시 준비자산을 현금·은행예금·잔존만기 93일 이내의 단기국채·국채담보 환매조건부채권 등으로만 채우도록 규정한다. 회사채 등 다른 자산은 준비자산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매달 준비자산 내역을 공개하고 독립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야 하며, 스테이블코인 자체에 이자나 수익을 얹어주는 것도 금지된다. 이 법으로 인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사실상 '단기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는 기관'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테더(USDT)의 미국채 보유량

2026년 1분기 기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약 2,300억 달러였고, 6월에는 2,700억 달러로 늘었다. 이 중 테더(USDT)가 약 1,420억 달러, 서클(USDC)이 약 600~730억 달러를 차지한다. 특히 테더의 국채 관련 노출 규모는 약 1,130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 세계 국가별 미국 국채 보유 순위에서 독일과 비슷한 수준인 18위권에 해당하는 규모다. 민간 암호화폐 발행사 한 곳이 왠만한 국가 하나에 맞먹는 미국 국채 보유자가 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명시적으로 밝힌 전략

이건 우연이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표방해온 전략이기도 하다. 행정부는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국채 수요처로 명시적으로 포지셔닝해왔다. 전 세계에서 달러가 필요한 사람들이 은행 계좌 없이도 스테이블코인으로 달러 자산에 접근할 수 있게 하면서, 그 뒤에서는 국채 매입이 자동으로 늘어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부가 최근 암호화폐 업계 전반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고 클래리티법안 통과를 서두르는 것도, 단순히 업계 로비에 호응하는 차원을 넘어 국채 수요 기반을 넓히려는 재정 전략과 맞닿아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미국채 시장과 직결된 스테이블코인 리스크

이 구조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만약 특정 스테이블코인에 대규모 상환(런) 사태가 벌어지면, 발행사는 보유한 단기국채를 한꺼번에 매각해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곧바로 국채 시장의 매도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GENIUS법이 준비자산 요건과 상환 유동성 규정을 까다롭게 둔 것도, 이런 시나리오가 국채 시장 전체로 번지는 걸 막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국채 수요를 늘려주는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금융 안정성 리스크를 국채 시장에 발생시킬 수 있는 셈이다.

미국채 대체가 아닌 우회로

정리하면, 스테이블코인은 국채를 대신하는 자산이 아니라 국채 수요를 새로운 경로로 창출하는 도구에 가깝다. 은행 계좌를 열기 어려운 신흥국 이용자나, 자국 통화 신뢰도가 낮은 지역의 개인들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사실상 달러 자산에 접근하게 되면, 그 뒤편에서는 미국 단기국채 수요가 함께 늘어난다. 3편에서 살펴본 탈달러화가 각국 중앙은행 차원에서 진행되는 흐름이라면, 스테이블코인은 그와는 정반대로 개인·기업 단위에서 달러 노출을 오히려 늘리는 경로로 볼 수 있다. 같은 시기에 국가 차원의 탈달러화와 민간 차원의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지금의 통화 질서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달러체제 5부작 - 3편 탈달러화


📖 용어 설명
스테이블코인 — 가격이 달러 등 특정 자산에 고정되도록 설계된 암호화폐. 발행사가 보유한 준비자산이 그 가치를 뒷받침한다.
페그(Peg) — 스테이블코인 가격을 특정 자산(주로 1달러)에 고정하는 것. 담보 자산이나 상환 보장, 알고리즘 등을 통해 유지된다.
테라-루나 사태 — 2022년 5월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테라(UST)가 페그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한 사건. 자매 코인 루나(LUNA)와의 연동 구조가 오히려 악순환을 일으켜, 일주일도 안 돼 관련 생태계에서 약 450억 달러가 증발했다.
GENIUS법 — 2025년 7월 서명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제법. 준비자산을 현금·단기국채 등으로 한정하고, 매달 공시와 독립 감사를 의무화했다.
뱅크런(스테이블코인 런) — 다수의 보유자가 한꺼번에 상환을 요구하면서 발행사가 준비자산을 급하게 처분해야 하는 상황.

📰 참고 기사:
Stablecoins after GENIUS: Private money, public debt, and the global dollar
What are the different types of stablecoins? - The Block
UST's Collapse & The Trades That Triggered It - Chainalysis
GENIUS Act Explained: US Stablecoin Law & 2026 Rules
Stablecoins meet the statute: GENIUS, MiCA, and the Treasury bid in 2026
Text - S.1582 - GENIUS Act | Congress.g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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