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29일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57% 급증하며 또 한 번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지만, 정작 시장 예상치에는 못 미쳤다. 어제 코스피를 10% 넘게 끌어내렸던 'AI 반도체 밸류에이션 우려'가, 이번엔 SK하이닉스의 실제 실적표를 통해 다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매출 3배, 영업이익 6배 넘게 늘었는데도 '어닝쇼크'
SK하이닉스는 2분기 연결기준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6.8%, 영업이익은 557.2% 급증했고, 전 분기 대비로도 매출 50.9%, 영업이익 61.0%가 늘며 직전 분기 세운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영업이익률은 76.3%에 달했다. 그런데도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증권사 컨센서스는 매출 83조6,460억원, 영업이익 63조6,593억원을 예상했는데, 실제 실적은 이보다 각각 3조원, 2조3,000억원가량 낮았다. 순이익은 13배 넘게 급증했는데, 이는 지난달 마무리된 일본 키옥시아 지분 매각과 관련한 투자자산 처분이익(60조9,000억원 규모)이 크게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왜 실적은 사상 최대인데 시장은 실망했나
SK하이닉스는 이번 실적 부진의 배경으로 "AI 서버용 고성능 제품 중심의 가격 상승이 실적을 이끌었다"고 설명하면서도, 경쟁사보다 고가 AI 메모리(HBM) 노출 비중이 높다 보니 최근의 범용 D램 가격 급등 랠리로부터는 상대적으로 덜 수혜를 봤다고 밝혔다. 즉 역설적으로, HBM에 집중된 사업 구조가 이번 분기에는 오히려 발목을 잡은 셈이다. 시장의 반응은 더 근본적인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최근 몇 년 새 워낙 가파른 성장이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역대급 실적'조차 시장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 것이다. 2년 전이었다면 압도적인 호실적으로 평가받았을 수치가, 지금은 오히려 '실망'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이 소식에 SK하이닉스 주가는 장 전 거래에서 4.5% 하락했다.
올해 설비투자 40조원대 후반으로 확대
SK하이닉스는 이날 올해 설비투자(CAPEX) 규모를 40조원대 후반(약 275억달러 상당)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AI 투자 경쟁에서 경쟁사 삼성전자를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참고로 삼성전자도 이날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810% 급증한 89조4,000억원을 기록했다고 잠정 집계했는데, 삼성전자 주가 역시 AI 인프라 투자 둔화 우려 속에 하락했다. SK하이닉스 곽노정 대표는 최근 HBM 공급 부족이 203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어, 회사 측은 이런 장기 공급 부족 전망을 근거로 공격적인 투자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필자가 보기엔 — 어제 코스피 폭락에 대한 '첫 실적표 답변'
개인적으로 이번 실적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이 발표가 단순한 분기 실적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어제 코스피가 10% 넘게 폭락했던 핵심 배경은 중국 CXMT의 급성장과 'AI 메모리 수요가 정점을 지났다'는 이른바 AI 고점론이었다. SK하이닉스의 이번 실적은 그 우려에 대한 첫 번째 실질적인 답변인 셈인데, 결과는 명확하게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실적 자체(매출·이익의 절대 규모)는 AI 붐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보여주지만, 컨센서스 미달이라는 결과는 시장이 이미 그보다 훨씬 높은 기대치를 선반영해뒀다는 걸 보여준다.
다만 짚어볼 부분은, 이번 '미스'가 사업 자체의 둔화라기보다는 제품 믹스의 문제에 가깝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는 HBM에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범용 D램 가격 급등의 수혜를 상대적으로 덜 봤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뒤집어 보면 회사의 핵심 경쟁력인 HBM 사업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히려 회사가 설비투자를 40조원대 후반으로 늘리며 공격적으로 나서는 건, 지금의 조정을 일시적 밸류에이션 조정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읽을 수 있다. 결국 앞으로 발표될 삼성전자의 확정 실적과 미국 빅테크들의 실적, 그리고 이번 주 예정된 FOMC 결과까지 종합적으로 확인해야, 어제부터 이어진 이 밸류에이션 논쟁의 방향이 좀 더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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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센서스 — 여러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치를 평균 낸 시장의 종합 예상치로, 실제 실적이 이를 밑돌면 '어닝쇼크', 웃돌면 '어닝서프라이즈'라 부른다.
HBM(고대역폭메모리) — D램을 수직으로 여러 층 쌓아 올려 데이터 처리 속도를 크게 높인 고성능 메모리로, AI 서버용 GPU에 필수적으로 탑재된다.
제품 믹스 — 기업이 판매하는 여러 제품의 구성 비율로, 수익성이 다른 제품 비중이 바뀌면 매출이 늘어도 이익률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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