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연준(Fed) 의장 케빈 워시는 다음 주 처음으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주재한다. 아직 그의 실제 투표 기록이 없다 보니, 시장은 대신 그가 반복해서 쓰는 '핵심 문구'를 근거로 앞으로의 통화정책 방향을 역추적하고 있다. CNBC 수석 경제 기자 스티브 리스먼은 지난 4월 이후 워시의 다섯 차례 공개 발언을 분석해, 그가 유독 자주 반복하는 세 가지 표현을 짚어냈다. 각각 '가족 싸움(family fight)'을 13번, '제1원칙(first principles)'을 11번, '인플레이션은 선택이다(inflation is a choice)'를 6번 사용했다.
쉽게 말하면 이런 상황이다. 새로 부임한 조직의 수장이 아직 구체적인 정책 발표는 하지 않았는데, 회의 때마다 자꾸 같은 표현을 반복해서 쓴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저 말이 대체 무슨 뜻일까"를 놓고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셈이다. 세 표현을 하나씩 풀어보면, '가족 싸움'은 "내부에서는 치열하게 논쟁하되 밖으로는 다투는 모습을 다 드러내지 말자"는 취지에 가깝다. 가족끼리는 크게 다퉈도 남들 앞에서는 화목한 척하는 모습에 빗댄 표현이다. '제1원칙'은 "복잡한 경제 이론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워시가 평소 강조해온 '연준이 학계 이론에 너무 의존한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가장 주목받는 '인플레이션은 선택이다'는 "물가가 계속 오르는 게 외부 요인 탓이 아니라, 연준이 그걸 방치하기로 선택한 결과일 수 있다"는 의미로, 사실상 연준 스스로 물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런 표현이 반복될수록, 시장은 "이 사람은 물가를 예사롭지 않게 강하게 다룰 사람"이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가족 싸움" — 더 활발한 내부 토론을 예고하나
첫 번째 표현 '가족 싸움'을 두고 연준 관찰자들의 해석이 갈렸다. 솔러스 얼터너티브 자산운용의 댄 그린하우스 전략가는 "워시 의장이 정책을 둘러싼 더 개방적인 논쟁을 장려하고, 기존 통념이 그냥 받아들여지기보다 도전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면 결국 더 나은 정책 결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그 효과는 개별 회의의 결론을 바꾸는 것보다는, 시간이 지나며 의사결정 과정의 질 자체를 높이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연준 저술가이자 포토맥리버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인 마크 스핀델은 다른 시각을 내놨다. 그는 이 표현이 "대통령, 의회, 시장 같은 외부 압력으로부터 책임을 분산시키는 방패 역할도 한다"고 짚었다. JP모건 수석 미국 경제학자 마이클 페롤리는 좀 더 단순하게 봤다. "가족 싸움이라는 표현은 워시가 소탈한 이미지를 주려는 시도로 보이며, 벤 버냉키 전 의장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직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로레타 메스터는 좀 더 현실적인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19명이 둘러앉은 회의에서는 어느 정도 순서와 질서가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목소리가 가장 큰 사람의 의견만 들리게 되고, 오히려 발언 기회를 잡기 어려워져 표현되는 견해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1원칙" — 학계 이론에 대한 불신
두 번째 표현 '제1원칙'은 워시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그는 연준이 중립금리, 필립스 곡선, 포워드 가이던스 같은 결함 있는 모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학계 정설'로 흘러갔다고 비판해왔다. 뱅가드는 2026년 전망에서 중립금리를 3.5%로 추정했는데, 이는 현재 정책금리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만약 워시가 연준의 추정 도구 자체가 고장 났다고 본다면, 점도표(dot plot)의 비중이 줄어들 수 있고 대차대조표, 재할인 창구, 정책 프레임워크 재검토까지 모두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스핀델은 이 표현을 워시의 "현대 통화정책 프레임워크에 대한 더 폭넓은 회의론"과 연결지으며, 필립스 곡선이나 경제 예측 모델이 "워시의 제1원칙적 접근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페롤리는 이를 워시가 평소 엘리트 박사 경제학자들을 겨냥해온 발언과 연결지으며, "학계 중심 인재들이 연준을 몇 가지 기본적인 경제 원칙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인식을 준다"고 풀이했다. 전 연준 이코노미스트 클라우디아 삼은 워시가 이 야심을 실제로 이뤄낼지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잘못된 가정을 지적하려면 그걸 대체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워시가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플레이션은 선택이다" — 개인 투자자가 가장 주목해야 할 표현
여섯 번 사용된 세 번째 표현은 모든 개인 투자자가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으로 꼽힌다. 리스먼은 이를 이렇게 풀이했다. "워시의 메시지는 본질적으로 '책임은 우리(연준)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워시 의장은 지속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연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설명에는 관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숫자로 보면 — 채권시장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채권시장 얘기가 왜 나오는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채권은 가격과 금리(수익률)가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상품이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 같다"고 시장이 예상하면, 사람들은 지금 나온 채권을 덜 사려 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새 채권이 나올 텐데, 굳이 지금 낮은 이자의 채권을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지금 채권의 가격은 떨어지고, 가격이 떨어진 만큼 실제 수익률(금리)은 오히려 올라간다. 즉 채권 금리가 오르고 있다는 건, 시장이 "앞으로 정책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미리 베팅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9월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이미 금리 인상 가능성을 67%로 반영하고 있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10일 이후 정책금리 상단을 3.75%로 유지해왔는데, 2년물 국채 금리는 현재 약 4.25% 수준에서 거래되며 현재 정책금리보다 약 0.5%포인트 높게 형성돼 있다. 채권 곡선의 중간 구간이 정책금리보다 이렇게 높게 형성돼 있다는 건, 채권시장이 "지금의 금리 수준이 틀렸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10년물 국채 금리도 4.63%까지 올랐고, 수익률 곡선 자체가 가팔라지는 추세다. 워시는 다음 주 수요일 첫 FOMC 회의에서 이 질문에 직접 답해야 하는 상황이다.
필자가 보기엔 — 투표 기록 대신 핵심 문구를 분석하는 이유
개인적으로 이번 사례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시장이 새 연준 의장을 파악하는 방식 자체가 평소와 다르다는 점이다. 통상 새 의장이 오면 시장은 과거 투표 성향이나 이전 발언 중 정책에 관한 명시적 입장을 근거로 향후 행보를 예측한다. 그런데 워시는 전임자들보다 말을 아끼는 편을 택했고, 그 결과 시장은 그가 실제로 하는 몇 안 되는 말, 그중에서도 반복되는 표현 자체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역설적으로 워시가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시장이 얼마나 새 의장의 성향에 목말라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같은 표현을 두고 해석이 꽤 엇갈린다는 점이다. '가족 싸움'이라는 표현 하나만 봐도 누군가는 "더 나은 정책 결정으로 가는 긍정적 신호"로, 누군가는 "책임 회피용 방패"로, 누군가는 "그냥 소탈한 화법"으로 각기 다르게 읽는다. 이는 워시의 말이 아직 구체적인 정책 방향까지 확정적으로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관건은 이런 언어적 신호가 아니라, 다음 주 수요일 첫 FOMC 회의에서 실제로 나올 결정과 점도표, 그리고 그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에 대해 연준의 책임을 어떻게 언급하는지에 있다. 시장이 반영한 9월 금리 인상 확률 67%가 실제로 맞아떨어질지도 이 첫 회의에서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 미국 연준 내에서 기준금리 등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구.
점도표(Dot Plot) — FOMC 참석자 각자가 예상하는 향후 금리 수준을 점으로 표시한 차트로, 위원회 전체의 금리 전망 방향을 가늠하는 데 쓰인다.
중립금리 — 경기를 부양하지도 억제하지도 않는, 이론적으로 '균형 잡힌' 수준의 금리를 뜻하는 개념.
필립스 곡선 —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사이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 경제 이론으로, 통화정책 결정에 오랫동안 활용돼 왔다.
📰 참고 기사:
Kevin Warsh has homed in on three key phrases. How Fed watchers interpret them
'Inflation Is a Choice': Cracking Fed Chair Kevin Warsh's Code Before Next Week's Rate Showdown
Fed Watchers Decode Three Signature Phrases From New Fed Chair Kevin War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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