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지출은 늘고, 임금도 오르고, 기업 인수합병도 활발하다. 겉으로만 보면 미국 경제가 최근의 인플레이션 충격을 무사히 통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CEO 브라이언 모이니한은 CBS 방송 인터뷰에서 이 표면 아래 좀 더 불편한 진단을 내놨다.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오래 버티면서, 연준이 결국 금리를 다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는 경고다.
"물가가 내려가긴 하는데, 너무 느리다"
모이니한의 핵심 우려는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빨리 꺾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물가는 내려가고 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것보다 훨씬 느리게 내려가고 있다"며 주거비, 식료품비, 유류비 등 필수 비용의 부담이 계속되고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주유소 가격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기업들이 "파이프라인을 타고 들어오는 상품 원가"를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는데, 높아진 에너지 비용이 플라스틱, 원자재, 제조, 운송 비용에 시차를 두고 반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지연된 파급 효과 때문에 BofA 이코노미스트들은 "인플레이션이 2027년, 심지어 2028년까지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6개월 전엔 '금리 인하', 지금은 '금리 인상'
이 전망은 BofA의 금리 전망을 완전히 뒤집어놨다. 모이니한은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자신의 팀이 연준의 금리 인하를 예상했었는데, 지금은 지속되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오히려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고 밝혔다. 긴축 사이클은 연말 즈음 시작해 내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실제로 BofA는 지난 6월 전망에서 올해 9월, 10월, 12월 세 차례에 걸쳐 각각 0.25%포인트씩, 총 0.75%포인트의 금리 인상을 예상한 바 있다.
수치로 이 얘기를 좀 더 뜯어보면 체감이 될 것이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현재 기준금리 범위는 3.5~3.75%인데, BofA 예상대로 세 차례 인상이 이뤄지면 4.25~4.5%까지 오르게 된다. 이는 연준이 지난 6월 제시했던 연말 중간 전망치(3.75%)보다 0.6%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자, 현재 시장이 선물 가격에 반영하고 있는 예상치(약 4%)보다도 높은 수치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변동금리 부채 1만 달러당 연간 이자 부담이 약 75달러씩 늘어나는 셈이다. 실제 물가지표를 봐도 5월 기준 헤드라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4.1%, 근원 PCE는 3.4%로 이미 연준의 연간 목표치(각각 3.6%, 3.3%)를 웃돌고 있다.
둘로 쪼개진 경제 — 위쪽은 여유, 아래쪽은 팍팍
인터뷰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 경제가 사실상 두 갈래로 나뉘어 굴러가고 있다는 진단이다. 모이니핸은 "구매력 부담이 크다"면서도, BofA의 고객 7,000만 명이 지난 6월 기준 전년 대비 6% 정도 더 지출하고 있다며 전체 소비 자체는 여전히 견조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온도차가 뚜렷하다. 중간 소득층과 상위 소득층의 지출 증가 속도가 더 빠른 반면, 임금 상승률은 소득 구간과 무관하게 최근에야 3~4% 선으로 겨우 수렴한 상태다. BofA가 앞서 짚었던 것처럼 "고소득층엔 물가 재상승, 저소득층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이른바 K자형 경제 흐름이 이번 인터뷰에서도 재확인된 셈이다. 실제로 상위 1% 소비 증가율은 9%에 달했지만, 저소득층은 5.5%에 그쳤다.
필자가 보기엔 — 숫자로 보면 이미 목표치를 넘어섰다
개인적으로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눈여겨볼 지점은, 모이니의 경고가 막연한 우려가 아니라 이미 나온 실제 수치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5월 헤드라인 PCE 4.1%, 근원 PCE 3.4%라는 숫자는 연준 스스로 제시한 연간 목표치를 이미 넘어선 상태다. 여기에 휘발유값 하락처럼 인플레이션을 낮출 만한 요인이 있는데도, BofA가 굳이 "더 오래 갈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는 결국 임금·기대인플레이션 같은 2차 파급 효과를 걱정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비용 상승분을 가격에 얹고, 노동자가 실질임금 하락을 만회하려 하고, 소비자들이 "앞으로도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믿기 시작하면, 에너지값이 내려가도 인플레이션 자체는 쉽게 안 꺾인다는 논리다.
다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 시나리오가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 조건부 전망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평균 휘발유 가격이 올해 갤런당 3.64달러에서 내년 3.09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이 흐름과 함께 근원 서비스 물가, 임금, 기대인플레이션까지 동시에 진정된다면 BofA의 '장기 고물가' 시나리오 자체가 힘을 잃을 수 있다. 즉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금리가 오를 것이다"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앞으로 발표될 근원 PCE 지표와 임금 상승률 흐름을 함께 지켜보며 이 시나리오가 실제로 맞아떨어지는지를 확인하는 일일 것이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PCE(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정책 결정 시 가장 중시하는 물가 지표로, 소비자가 실제 구매한 상품·서비스 가격 변동을 반영한다. '헤드라인'은 모든 품목을, '근원'은 변동성이 큰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수치를 뜻한다.
2차 파급 효과(Second-round effect) — 최초의 물가 상승 충격(예: 유가 상승)이 임금, 기업 가격 정책, 기대인플레이션 등을 거쳐 물가 전반으로 재차 확산되는 현상.
K자형 경제 — 경기 회복이나 둔화 국면에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상황이 서로 반대 방향(K자 모양)으로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을 뜻하는 표현.
📰 참고 기사:
Bank of America CEO warns inflation will back Fed into a co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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