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들이 수백억 달러를 쏟아부어 AI 모델을 개발하는 사이, 중국의 문샷AI(Moonshot AI)가 만든 오픈소스 모델 '키미(Kimi)'가 훨씬 적은 비용으로 근접한 성능을 내놓으며 실리콘밸리를 긴장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 효율의 비결을 두고 최근 백악관까지 나서 "훔친 기술"이라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10분의 1 비용으로 맞먹는 성능
문샷AI가 지난 7월 중순 공개한 '키미 K3'는 약 2.8조 개 파라미터 규모의 오픈소스 모델이다. 공개 며칠 만에 코딩 성능을 겨루는 주요 리더보드 상위권에 오르며 미국 빅테크 주가에까지 영향을 줬고, 이용자가 폭증하면서 문샷AI는 48시간 만에 GPU 부족으로 신규 구독을 일시 중단해야 했다. 앞서 나온 '키미 K2.5'도 시장의 주목을 받았는데, GPT-5.2를 웃도는 벤치마크 점수를 기록하면서도 실제 운영 비용은 76% 저렴한 것으로 평가됐다. 이런 가성비의 핵심은 '전문가 혼합(MoE)' 구조다. 전체 모델은 1조개가 넘는 파라미터를 갖췄지만, 실제 질문 하나를 처리할 때는 그중 극히 일부(약 32억개 수준)만 작동시켜, 훨씬 작은 모델 수준의 연산 비용으로 큰 모델급 성능을 낸다는 설명이다.
백악관 "앤트로픽 모델을 증류해 만들었다"
문제는 이런 효율이 정당한 기술 혁신만으로 설명되느냐는 데 있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 마이클 크라티오스 실장은 최근 문샷AI가 앤트로픽의 '페이블(Fable)' 모델을 증류해 키미 K3를 만들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이를 "미국 기술을 훔치기 위한 대규모 은밀한 산업적 증류"라고 표현했고, 별도로 문샷AI가 태국을 경유해 엔비디아의 GB300 칩을 확보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에는 앤트로픽이 딥시크, 문샷AI, 미니맥스 등 중국 AI 랩들을 겨냥해, 약 2만4,000개의 부정 생성 계정을 통해 클로드와 1,600만 건이 넘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대규모 산업적 증류를 시도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앤트로픽은 증류 자체가 정당한 기술 기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경쟁사가 이를 통해 훨씬 짧은 시간과 비용으로 첨단 역량을 확보하는 경우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문샷AI "정상적인 기술 개발"이라 반박
문샷AI 측은 이런 의혹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있다. 대신 키미 K3의 공식 기술 블로그에서는 KDA·AttnRes 결합 구조, 안정적인 잠재 MoE(16/896), 저정밀도 학습 기법(MXFP4/MXFP8), 그리고 이전 모델 대비 약 2.5배의 확장 효율을 근거로 제시하며, 이는 증류 의혹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통상적인 아키텍처 설명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과 미국, 베이징과 중국 당국도 앞선 2월 앤트로픽의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이를 거부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문샷AI가 실제로 경쟁 모델을 증류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아직 제한적이며, 웹에서 수집한 학습 데이터에 클로드와의 대화 기록이나 남겨진 시스템 프롬프트가 섞여 들어갔을 가능성 같은 '무고한' 설명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신중론도 함께 나오고 있다.
실제로 나스닥이 흔들렸다 — 딥시크 쇼크의 재현
이 논란과 별개로, 키미 K3 공개 자체가 실제 증시를 흔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17일 나스닥지수는 1.4%, S&P500은 1.01%, 다우존스는 0.77%(407포인트) 하락했다. 개별 종목 낙폭은 더 컸다. 엔비디아는 2.2% 빠지며 시가총액이 일시적으로 애플 아래로 내려갔고,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는 5.6%, 낸드 플래시업체 샌디스크는 4% 하락했다. 특히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시놉시스는 키미 K3가 자체 칩 설계 역량까지 시연했다는 소식에 7.85% 급락하며 하루 만에 시가총액 약 63억달러가 증발했다. 아시아 증시도 함께 흔들려 대만 가권지수는 6% 넘게, 일본 닛케이지수는 4% 하락했고, 국내에서도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장이 우려하는 지점은 명확하다. 값싼 오픈소스 모델이 미국 빅테크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하면, 그동안 정당화됐던 천문학적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 자체의 논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키미도 딥시크의 전철을 밟을까
이번 사태는 2025년 초 딥시크가 촉발했던 '딥시크 쇼크'와 판박이라는 평가가 많다. 당시에도 딥시크 R1 공개 하루 만에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약 6,000억달러 증발하는 등 역대급 하락이 있었다. 그렇다면 딥시크는 그 이후 실제로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완전히 무너졌다'기보다는 '초기의 극적인 화제성이 가라앉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딥시크는 여전히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올해 4월에는 텐센트·알리바바 등이 참여하는 신규 투자 유치를 추진하며 한때 450억달러 규모의 기업가치가 거론되기도 했다. 다만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산하 기관의 최근 평가에 따르면 딥시크는 여전히 최전선 AI 기술 대비 약 8개월가량 뒤처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탈리아·호주·대만·한국 등 여러 국가에서 보안 우려로 공공기관 사용을 제한하는 조치를 받기도 했다. 즉 시장을 놀라게 했던 첫 등장의 충격은 시간이 지나며 옅어졌지만, 그렇다고 아예 도태된 것도 아닌 셈이다.
필자가 보기엔 — 진실 공방보다 중요한 질문
개인적으로 이 사안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증류'라는 기법 자체가 원래 학계에서도 널리 쓰이는 정당한 기술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 아니라 규모와 방식이다. 소규모로 공개된 모델 출력을 참고해 학습에 활용하는 것과, 수만 개의 위장 계정을 동원해 경쟁사 API에서 수천만 건의 대화를 조직적으로 긁어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후자가 사실이라면, 이는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해 원천 기술을 만든 쪽의 성과를 우회로로 가로채는 셈이라, 정당한 경쟁이라 보기 어렵다.
다만 짚어볼 부분은, 지금 단계에서는 이 의혹이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미국 정부와 앤트로픽 측의 일방적 주장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문샷AI를 포함한 중국 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고, 독립적인 제3자가 완전히 검증한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성능과 비용 효율만 놓고 보면 문샷AI가 실제로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뤄낸 것도 사실이어서, 모든 성과를 '증류로 얻은 공짜 열매'로만 단정하는 것도 성급할 수 있다. 딥시크의 사례에 비춰보면, 키미 역시 첫 등장의 충격은 시간이 지나며 옅어지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딥시크가 '뒤처진 성능'이라는 한계로 화제성이 식어갔다면, 키미는 이번 증류·수출통제 위반 의혹이 실제로 어떻게 검증되고 규제로 이어지느냐가 딥시크와는 다른 방식의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 논란의 실체는 향후 나올 기술적 검증 결과와 각국 정부의 대응(수출통제 강화, API 접근 제한 등)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지켜봐야 좀 더 분명해질 것으로 보인다.
(※ 본 포스팅은 특정 기업이나 국가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글이 아니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증류(Distillation) — 크고 성능이 뛰어난 '교사' 모델의 출력을 학습 데이터로 활용해, 더 작고 저렴한 '학생' 모델을 훈련시키는 AI 기법. 학계에서는 정당한 기술로 통용되지만, 경쟁사의 API를 대량으로 긁어내 무단으로 활용하면 논란이 된다.
전문가 혼합(MoE, Mixture of Experts) — 모델 전체를 여러 '전문가' 하위 네트워크로 나누고, 질문마다 그중 일부만 선택적으로 작동시켜 연산 비용을 줄이는 AI 모델 설계 방식.
오픈소스(오픈웨이트) 모델 — 모델의 가중치(학습된 파라미터 값)를 공개해, 누구나 내려받아 자체 서버에서 구동할 수 있도록 만든 AI 모델.
📰 참고 기사:
AI News Today July 23 2026: White House Accuses Moonshot of Distilling Anthropic's Fable
Kimi K3: China's 2.8-Trillion-Parameter Open Model Rattles Silicon Valley
Moonshot AI in 2026: Kimi K3, Open Weights & Strategy
Nasdaq, S&P 500 drop 1% after China's latest AI breakthrough rattles tech stocks
China's 'Kimi K3' Shakes US Chip Stocks, Weighs on Samsung and SK hy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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