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억 달러 규모의 파라마운트-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 합병이 유럽에서는 청신호를, 미국에서는 빨간불을 동시에 만났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22일 이 거래를 승인하며 중요한 규제 장벽을 넘어섰지만, 정작 본토인 미국에서는 여러 주정부의 소송으로 발이 묶인 상태다.
EU는 조건부 승인, 유니버설과 10년간 거리두기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의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 인수를 공식 승인했다. 승인의 대가로 파라마운트는 몇 가지 조건에 합의했다. 유럽 내 영화 배급 합작사인 UIP(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 지분을 거래 완료 후 13개월 안에 정리하고, 앞으로 10년간 유럽에서 유니버설픽처스와 어떠한 영화 배급 계약도 맺지 않기로 한 것이다. EU 측은 이 조치가 경쟁 우려를 "완전히 해소한다"고 평가했다. 파라마운트는 이미 미국, 호주, 브라질, 캐나다, 중국, 한국 등 다수 국가에서 경쟁당국 승인을 받은 상태였고, 이번 EU 승인으로 남은 규제 절차 중 상당 부분을 통과했다.
미국에서는 정반대 상황
문제는 정작 이 거래의 본거지인 미국이다. 캘리포니아주 롭 본타 검찰총장이 이끄는 여러 주정부 연합이 반독점법 위반을 이유로 합병을 막기 위한 소송을 제기했고, 캘리포니아 연방판사는 이번 주 초 이 거래에 대해 14일간의 임시 정지 명령을 내렸다. 주정부 측은 이 합병이 반독점법상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장했고, 법원은 오는 8월 3일 관련 심리를 열 예정이다. 파라마운트 측은 EU의 이번 승인 결정이 "주 검찰총장들의 소송을 뒷받침하는 핵심 전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지연은 파라마운트에 실제 비용을 발생시키고 있다. 합병 계약에는 9월 30일까지 거래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매일 주당 25센트, 하루 약 700만달러(분기 기준 약 6억5,000만달러)를 워너브라더스 주주들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티킹피(ticking fee)' 조항이 포함돼 있다. 만약 규제 문제로 거래 자체가 무산되면 파라마운트는 별도로 70억달러의 위약금까지 물어야 한다. 여기에 미국작가조합(WGA)도 이번 합병이 작가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필자가 보기엔 — 지역별로 극과 극인 규제 온도차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같은 거래를 두고 지역마다 규제당국의 시각이 이렇게까지 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EU는 "유럽 내 영화 배급 시장에서의 경쟁 제한"이라는 비교적 좁은 범위의 우려만 확인하고, 그 부분만 조건부로 해소되면 승인하는 실용적인 접근을 취했다. 반면 미국 주정부들은 방송 네트워크, 스트리밍 서비스(HBO맥스·파라마운트+)까지 아우르는 거대 콘텐츠 포트폴리오 전체가 미국 내 미디어 시장 경쟁 구도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훨씬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즉 이 합병은 '어느 나라에서 승인받았는가'만으로 성사 여부를 가늠할 수 없고, 결국 각 시장이 무엇을 '경쟁 침해'로 판단하는지에 대한 기준 차이가 이 거래의 운명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다만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런 지연 자체가 이미 상당한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 700만달러에 달하는 티킹피는 거래가 예정대로 9월 말까지 마무리되지 않을수록 파라마운트에 실질적인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는 단순히 법적 승인 여부를 넘어, 규제 지연 자체가 거래의 경제성을 갉아먹는 별도의 리스크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8월 3일 캘리포니아 법원의 심리 결과가 어느 방향으로 나올지, 그리고 설령 최종적으로 승인받더라도 그 지연 기간 동안 누적되는 비용이 이 거래의 실질적 가치를 얼마나 갉아먹을지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특정 방향을 단정하는 글이 아닙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티킹피(Ticking Fee) — 인수합병 계약에서 거래 완료가 예정보다 지연될 경우, 인수하는 쪽이 상대 회사 주주들에게 매일 또는 매 분기 지급하기로 약속하는 추가 보상금.
위약금(Termination Fee) — 인수합병 계약이 특정 사유(규제 불승인 등)로 무산될 경우, 계약 당사자 중 한쪽이 상대방에게 지급하기로 약정한 손해배상 성격의 금액.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 유럽연합의 행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역내 기업결합 심사와 경쟁법 집행을 담당하는 EU의 사실상 경쟁당국 역할을 한다.
📰 참고 기사:
EU antitrust regulators clear Paramount-WBD merger as it faces challenge by U.S. states
EU Approves Paramount's $110 Billion Warner Bros. Takeover—Despite Pushback In The U.S.
Paramount Secures EU Nod for $110 Billion Warner Bros Deal, US Hurdles A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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