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이 두 달 가까이 1500원대에 갇혀 있던 원·달러 환율의 흐름을 바꾸고 있다. 지난 8일 하루 만에 30원 가까이 급락하며 37거래일 만에 1500원 선을 내줬고, 시장의 관심은 이제 3분기 중 1400원대 안착 여부로 옮겨가고 있다.
하루 만에 29.7원 급락 — 37거래일 만의 1500원 붕괴
지난 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9.7원 내린 1,498.5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1500원을 밑돈 것은 지난 5월 14일(1,491.0원) 이후 37거래일 만이다. 이후 10일에는 1,501.4원으로 소폭 반등했고, 12일 장중에는 다시 1,498.72원까지 내려오는 등 1500원 안팎에서 등락을 이어가고 있다.
배경은 SK하이닉스의 43조원 규모 ADR 조달
이번 환율 하락의 핵심 배경은 SK하이닉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이다. 상장을 앞두고 회사 측이 추산한 ADR 발행 규모는 약 285억달러(원화 약 43조원) 안팎이었다. SK하이닉스는 이 자금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기 팹, 청주 P&T7 첨단 패키징 팹 건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도입 등 국내 생산시설 투자에 사용할 계획이다. 국내 투자 과정에서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 그만큼 외환시장에 대규모 달러 공급이 발생하는데, 실제 자금이 들어오기도 전에 선물환 매도 등 환헤지 물량이 먼저 시장에 나오면서 환율을 밀어내렸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 민경원 이코노미스트는 ADR 상장으로 하루 10억달러 안팎의 신규 달러 유동성 공급이 예상되며, 이는 수출기업들의 선제적인 달러 매도(네고)까지 유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3분기 1400원대 중후반까지" — 전망은 엇갈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주식 순매도 진정, 미 금리정책 불확실성 해소, 슈퍼 엔저 현상 진정 기대 등을 근거로 3분기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이번 SK하이닉스발 달러 공급 효과를 두고 "한미 통화스와프에 버금가는 규모"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신한은행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는 "ADR 자금 유입 기대가 이미 환율에 선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고, KB국민은행 이민혁 이코노미스트는 "달러 조달자금이 단기간에 대부분 원화로 환전될 경우 역내 수급이 급격히 공급 우위로 전환될 수 있다"면서도 그 시점과 속도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중동 리스크·엔화 약세는 여전한 하방 제약 요인
환율이 곧바로 1400원대에 안착하기는 어렵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SK하이닉스 자금의 환전 규모와 시점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자금이 수개월에 걸쳐 나눠 들어올 가능성이 있어서다.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 글로벌 달러 강세, 엔화 약세도 환율 하락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순매도가 다시 확대될 경우, 매도대금을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가 SK하이닉스발 달러 공급 효과를 일부 상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달러예금 잔액도 2022년 12월 이후 최대치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개인과 기업의 대응도 분주해지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달러예금 잔액은 지난 9일 기준 709억 400만달러로 2022년 12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수입기업들이 결제대금을 미리 확보해두고, 개인 투자자들도 환율 하락 국면을 달러 매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매수 수요는 1500원 아래에서 환율 하단을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리하며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은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원화 약세 흐름에 실질적인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다만 43조원 규모의 자금이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집중적으로 환전될지가 불확실한 만큼, 시장에서는 1400원대 안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중동 리스크와 외국인 수급 등 다른 변수들과 함께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한 시각이 우세하다.
(※ 본 포스팅은 투자 권유가 아니며, 모든 투자의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ADR(미국주식예탁증서) — 외국 기업 주식을 미국 증시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대체 증서. 발행 대금은 보통 달러로 조달됨.
네고(수출 네고) — 수출기업이 보유한 달러를 은행에 팔아 원화로 바꾸는 것. 네고 물량이 늘면 환율 하락(원화 강세) 요인이 됨.
선물환 매도 — 미래 특정 시점에 달러를 팔기로 미리 계약하는 거래. 향후 달러 유입이 예정된 기업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활용하며, 시장에는 달러 공급 신호로 작용함.
📰 참고 기사:
환율 소방수된 SK하이닉스·일본…한달 만에 1490원대로
나스닥 간 SK하이닉스, 통화스와프급 달러 조달…환율 1400원대 끌어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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